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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이 자본이다/철학적 사고력

다수를 살리기 위해 소수를 죽이는 것은 정당한가.

오도원공육사 2020. 2. 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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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하다 [--] : 이치에 맞아 올바르고 마땅하다.

 

 다수를 살리기 위해 소수를 죽이는 것이 이치에 맞아 올바르고 마땅한가 라고 물어본다면 대부분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에서는 대부분이 다수를 살리기 위해 소수를 죽이는 방향으로 집단의 존립을 유지시켰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행동할까? 나는 그것이 이치에 옳고 그름을 떠나서 집단에 더 이익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수를 죽인다면 집단의 이익보다 손해가 더 클 것이고, 소수를 죽이는 것이 손해를 줄일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도 이런 양상은 쉽게 볼 수 있다. 기업에서의 구조조정 또한 기업이라는 다수를 살리기 위해서 소수의 직원을 죽이는 행위이다. 이로서 남은 다수의 직원들과 기업은 살아남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고는 "해당 입장이 되어서 생각해본다." 라는 역지사지의 관점은 배제한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가장 자비롭기 때문에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입장이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생각. "집단에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한다."라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자 사상이다. 자칫 잘못하면 전체주의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항상 소수의 의견을 배제하고 다수의 이익만을 위한 주장을 펼치는 정치가의 등장은 거대한 전쟁의 서막이었다.

 

 우리는 알고리즘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에서의 기차의 딜레마가 이것이다. 철로 위에 달리는 기차가 현재 철로로 가면 철로를 공사하는 인부 다섯 명을 치고, 선로를 바꾸면 행인 한 명을 치게된다. 얼핏보면 인부 다섯명을 위해 행인 한명을 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이 들겠지만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다. 그러한 행동이 "옳다"라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한다. 옳고 그른 것은 없다. 우리는 끊임없이 갈등해야할 뿐이다. 그리고 선로를 바꾸든 바꾸지 않든 그에 따른 결과에 책임을 져야한다. 

 

 그렇다면 다시, 다수를 살리기위해 소수를 죽이는 것은 정당한가. 답은 없다. 그 말을 굉장히 길고 형편없이 적어놨을 뿐이다. 하지만 항상 깨어있자. 그렇지 않으면 선로 위에 행인이 당신이고 당신은 그저 조종사가 선로를 바꾸지 않길 바라는 입장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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