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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이 자본이다/철학적 사고력

신은 존재하는가

오도원공육사 2020. 2. 6.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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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을 살펴보면 대략 세 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신이 존재한다.

둘째, 신은 없다.

셋째, 상관없다.


 사실 현대 사회에서는 세번째 관점이 가장 가깝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면에 첫번째와 두번째 관점 중 하나를 갖고 살아갈 것이다.

 

 내가 신이 있다고 주장한다면 이렇게 주장할 것이다. 인간의 염기서열은 A, G, T, C의 배열로 이루어져 있다. 염기서열은 DNA의 기본단위 뉴클레오타이드의 구성성분 중 하나인 핵염기들을 순서대로 나열해 놓은 것을 말한다. 유전자는 생물의 유전형질을 결정하는 단백질을 지정하는 기본적인 단위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은 염기서열을 통해 단백질을 지정하는 원리를 따른다. 약 30억쌍 정도의 염기서열이 존재한다. 하지만 저것의 순서가 조금이라도 비틀어진다면 인간은 존재할 수 없고, 만일 존재한다고 해도 어떤 의식도 갖지 않는 하나의 단백질 덩어리일 뿐이다.

 

 컴공을 전공한 나로서는 이걸 보고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visual studio를 켜서 화면에

#include <stdio.h> 

int main(void) { 
    printf("Hello World"); 
    return 0;
}

라고 작성했다고 해보자. 만일 저기서 내가 오타가 하나라도 있었다면 Hello World라는 문구가 화면에 출력될까? 아니면 눈을 감고 키보드를 아무렇게나 두드렸다면 Hello World라고 나올 확률이 얼마나 될까? 과학에 종사하는 사람들, 특히 생명과학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연구를 하다보면 신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신은 존재한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도대체 왜 그는 고통속에서 몸부림 치는 사람들을 구원하지 않는가? 13살의 어린 나이에 희귀병을 앓고 앞으로 1년도채 남지않은 날을 바라보면서 아파하는 소녀를 구해주지 않는가? 부모의 빚을 물려받고 청춘을 모두 허비한채 아직도 갚지 못한 억의 빚에 시달리며 다리 위에서 한강을 바라보는 청년을 구해주지 않는가? 신은 없다." 일리 있다. 도대체 왜 신은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는 것일까?

 

 나는 이러한 논제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해보았다. 그리고 이러한 결론은 내렸다. 당신은 살면서 영화를 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로맨스, 공포, 코미디, 액션. 다양한 영화를 봤을 것이다. 혹시 영화를 보면서 슬픈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는가? 그럼 그 장면을 봤을 때 당신은 어떤 행동을 취했는가? 주먹으로 모니터 속 악당을 때렸는가? 여주의 병원비를 대신 내주었는가? 신의 입장에서 우리는 단지 하나의 영화에 불과하다. 그는 우리를 하나의 영화로써 우리를 기획했고, 슬픈 영화를 볼 때는 안타까워하고, 재밌는 영화를 볼 때는 웃을 뿐이다. 그의 눈물과 웃음 속에는 어떠한 의도도, 구원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단지 그가 '나'라는 영화를 해피엔딩으로 제작했길 바랄 뿐이다. 

 

 또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주장을 할 수 있을까? "나는 태어나서 단 한번도 신을 본 적이 없다. 이 두눈으로 보기 전에는 신을 믿지 않을 것이다." 신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없다. 말이 되는 소린가? 본적이 없어서 없다.

 소리는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본 적이 있는가? 자력은 존재하는가? 존재한다면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어디서 태어났는가. 지구의 모든 곳을 가본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만일 누군가 사실 신은 화성에 존재한다고 하면 당신은 아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화성은 너무 허무맹랑한가. 그러면 신은 학생회관 지하 2층 화장실에 있다고하면 어떤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곳을 가봤는지는 모르겠지만 '본적이 없어서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이면 몰라도 '본적이 없어서 없다'는 주장은 옳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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