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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이 자본이다/철학적 사고력

무엇이 인간과 짐승을 구분하는가

오도원공육사 2020. 2. 13.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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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

 나치 독일 유태인 학살하기 위하여 만들었던 강제 수용소로, 폴란드 오시비엥침에 있는 옛 수용소이다. 1945년 기준 약 600만 명(유럽 전체 유대인의 80%)이 살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루타

 이 사진은 지난 1940년 11월 포착된 것으로, 중국 지린성에서 일본군이 ‘전염병 예방조치’라는 이름으로 진행했던 생체실험 현장이다. 성인 두명이 소년의 가슴에 무언가를 주입하고 있다. 오른쪽은 731부대장 중장 이시이 시로. 

 

지존파

 지존파 사건(至尊派 事件)은 김기환(당시 25세) 등 지존파 일당 7명이 1993년 7월부터 1994년 9월까지 5명을 연쇄 살인한 사건이다. 

 

 이들은 인간인가 짐승인가. 무엇이 인간과 짐승을 구분짓는가. 인간은 과연 동물과 어떻게 차별화된 특별한 존재인가. 18세기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절대적인 이성이 인간과 짐승의 차이를 만든다고 주장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틀렸다. 인간과 짐승을 구분짓는 것은 절대로 이성도 지능도 아니다. 

 

 수도 없이 많이 봐왔다. 짐승만도 못한 짓을 저지르는 인간들을. 그들은 이성을 갖고있지 않는가? 그들은 지능이 없는가? 아니다. 그들도 이성을 가지고 사고하고 행동한다. 그런 사고의 끝에 다다른 것은 끔찍하고 잔인한 악행뿐이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인간이 아닌가?' 인간이다. 다만, 생물학적으로는 인간으로 구분된다. 그러나 생물학적 구분은 더이상 의미가 없다. 무엇을 어떻게 스스로 규정짓는가가 중요하다. 나는 그들을 인간으로 구분지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나도 이렇게 묻겠다. 그들은 우리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 바라볼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과 짐승을 구분짓는 것은 절대로 지능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간과 짐승을 구분짓는 것일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도덕심. 선악과 옳고 그름을 판별하고 선을 행하려는 마음. 바로 그것이 인간과 짐승을 구분짓는 것이다. 위에 나열했던 것들은 절대로 인간이 아니다. 그들은 짐승만도 못한 존재들이다. 도덕심이 결여된 인간은 더이상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 또하나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면 도덕적인 것의 기준은 무엇인가. 길거리에 며칠 굶은 채로 누워있는 노숙자를 보고도 도와주지 않은 사람은 도덕적이지 않은 것인가? 어렵다. 쉽게 답하기 힘든 질문이다. 타인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은 엄연히 본인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므로 그것에 대해서 도덕심을 논하기는 힘들다. 다만, 보편적으로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도덕은 있다. 최소한의 도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만일 그것들이 지켜졌더라면 저런 끔찍한 악행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선택 하나하나의 순간마다 우리는 인간과 짐승의 경계선에 서있다. 

 

 그렇다면 다시, 무엇이 인간과 짐승을 구분짓는가. 바로 도덕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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